



1521년 3월 6일. 괌이 공식으로 서구 사회와 처음 만난 날입니다.
마젤란은 세계 일주를 하던 중 세 척의 배를 수리하기 위해 괌에 정박해 3일간 머무르게 됩니다.
마젤란은 그토록 찾았던 물과 신선한 채소들을 받는 대신‘철’을 주었습니다.
마젤란의 연대기를 썼던 안토니오 피가페타의 묘사에 따르면 차모로족의 초가집은 꼭대기에 라테라고
하는 단단한 산호 초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1 고유한 라테의 흔적은 섬 전체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라테는 말레이 군도에서만 발견되고 있습니다.
1565년. 스페인 왕 미구엘 로페즈 데 레가스피는 괌을 점령합니다. 이후 괌 원주민의 생활은 점차 서구화 되기 시작합니다.
1668년에 파드레 디에고 루이즈 드 산 빅토레즈 경이 인도하는 예수회가 카톨릭을 전파하고 무역을 하려는 목적으로 도착했습니다.
스페인인들은 차모로인들에게 서구 스타일의 옷 입는 것은 물론 옥수수 기르는 법, 새로 들여온 소 기르는 법, 가죽을 무두질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카톨릭은 확고히 전파되었고 성당이 마을 활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천주교가 세력을 넓혀 가면서 괌은 멕시코의 아카풀코에서 필리핀 마닐라까지 태평양을 교차하는 스페인 선박의 정박 항구가 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선박들은 중국의 실크와 향료와 바꿀 식민지에서 캔 값 나가는 금, 은을 가득 싣고 있었습니다.
괌의 전략적 위치는 발전하는 스페인의 경제, 정치 체제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거의 250년 동안 멕시코와 필리핀을 오고 가는 갈레온 선박들이 차모로 문화를 변화 시켰습니다.
갈레온 시대는 멕시코 혁명 이후인 1815년에 끝났습니다.
아직도 괌의 수정같이 맑은 해변에서는 여러개의 난파선을 볼 수 있습니다.



괌에서는 해방의 날로 알려져 있는 1944년 7월 21일, 미군이 괌에 상륙했습니다.
3주간의 전쟁으로 수천의 차모로인, 미군, 일본군의 생명을 앗아간 다음 괌은 다시 미국의 통치에 들어갔습니다.
미군은 괌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1945년 9월 2일 태평양에서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서태평양 작전지역으로 사용했습니다.
1946년 5월 30일 해군 정부가 다시 세워졌습니다. 3년 후인 1949년,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괌의 제한적
자치를 허용하고 괌이 미국에 합병되지 않은 영토임을 확인하는 조례를 발표했습니다. 조례에서는 미
국이 새로 얻는 영토가 괌이라고 불리울 것임을 선언했습니다. 이후 행정, 입법, 사법부의 3개의 부로
된 민간 정부가 세워졌고 괌 주민에겐 미국 시민권이 주어졌습니다. 1962년 해군은 괌 여행 제한을 해
제했으며 이로써 괌 경제는 살아났습니다.
1967년 팬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일본으로부터 괌까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괌 여행산업이 본격화되었
고 괌의 경제는 다양해지고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비의 증가 이외에도 관광과 관련된 건설, 소매,
금융산업은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해 주었습니다.